2021년 대체불가토큰(NFT) 열풍 속에 수억 달러 자금이 몰렸던 블록체인 게임 산업이 올해 들어 연쇄 셧다운과 구조조정에 직면하며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 한때 게임 산업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아 국내 주요 게임사들까지 잇달아 뛰어들었지만 게임 토큰·NFT 가격 급락과 함께 흥행 부진에 직면하며 버블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15일 가상화폐 시황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블록체인 게임 토큰 시장 규모는 198억 달러(약 27조 4824억 원)를 기록했다. 2021년 베트남 돈버는게임(Play to Earn·P2E) 엑시 인피니티 흥행을 기점으로 불었던 블록체인 게임 열풍 당시 대비 60% 급감한 수준이다. 블록체인 게임 토큰의 대표격이었던 엑시 인피니티 자체 토큰 AXS 가격도 165달러에서 2.53달러로 98% 폭락했다.
NFT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블록체인 게임 내 아이템·토지 등의 가치도 유지되지 못했다. 같은 시간 코인마켓캡 기준 전체 NFT 시가총액은 20억 달러에 불과해 2022년 4월 고점 당시 6521억 달러 대비 30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게임 토큰과 NFT 가치가 급락하자 신규 이용자 유입이 사실상 끊기고 기존 투자 성격의 이용자들까지 빠져나가면서 블록체인 게임 대다수가 존속 기반을 상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올해 들어 업계 곳곳에서 연쇄적인 서비스 종료가 이어지며 산업 전반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 디크립트에 따르면 올해에만 데드롭, 냥 히어로즈, 엠버 소드 등 주요 블록체인 게임 14개가 서비스를 종료한 것으로 집계됐다.
메타버스 열풍을 대표하던 더 샌드박스도 지난달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전체 직원 250명 중 절반 이상이 해고되고 한국을 포함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태국 등 여러 글로벌 오피스를 폐쇄했다. 자체 토큰 샌드박스(SAND) 가격은 최고가 대비 90% 폭락하면서 시가총액이 6조 원대에서 7천억 원대로 쪼그라든 상태다. 코인데스크는 “더 샌드박스는 수년간 3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지만 일일 활성 이용자는 수백 명 수준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상당수가 ‘봇’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성장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던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넥슨은 올해 5월 대표 지식재산권(IP)인 메이플스토리를 활용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내놓으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지만 기대만큼의 흥행을 거두지 못하면서 자체 토큰 NXPC는 상장 당시 최고가 대비 82% 하락했다. 토큰 출시 당시 에어드롭 참여를 위해 100만 명 이상 몰렸던 이용자 상당수가 차익 실현에 나서며 실제 게임 이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 익스플로러에 따르면 14일 기준 활성 지갑 수는 약 3만 7000개 수준에 그쳤다.
블록체인 게임 사업 진출 2년 만에 사업을 아예 접은 사례도 나왔다. 네오위즈는 올해 5월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인텔라X의 서비스 종료를 공식화했다. 한때 글로벌 30여개 파트너사와 협력해 재미와 편리성을 갖춘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을 표방했지만 이용자 기반 확보에 실패하자 블록체인 사업 전략을 전면 재검토한 것이다. 네오위즈는 대신 탈중앙화 예측·베팅 서비스 프레딕트고 출시로 방향을 선회하며 새로운 블록체인 사업 모델 모색에 나서고 있다.
국내 블록체인 게임 업계의 ‘이슈 메이커’로 불렸던 장현국 전 위메이드 대표도 최근 블록체인 게임 플랫폼 크로쓰를 내놓으며 시장을 잠시 달궜지만 이마저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자체 토큰 CROSS 가격은 7월 최고가 대비 46% 하락했으며 크로쓰스캔에 따르면 14일 기준 활성 지갑 수는 649개에 불과하다.
시장에서는 국내외 대형사들의 잇단 부진이 블록체인 게임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큰·NFT 가격 변동성에 의존하는 블록체인 게임의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평가다. 산업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업계 차원에서 자생 노력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NFT 카드게임 스플린터랜즈는 최근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 이용자를 대상으로 50만 달러 규모의 무료 NFT 자산을 배분하는 ‘크립토 게이밍 회복 펀드’를 출범했다. 스플린터랜즈 측은 “수많은 커뮤니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업계 성장을 위해 경쟁사 누구든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