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에 가로 막혀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바이낸스는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국내 투자자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1·2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와 빗썸의 글로벌 경쟁력은 2018년과 비교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코인게코 기준 2018년 4분기 빗썸은 전세계 가상자산 거래 시장에서 평균 점유율 33.43%로 1위를 기록했지만 2024년에는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20년 케이뱅크와 실명계좌 계약을 체결한 뒤 국내 1위를 지켜온 업비트도 2024년 글로벌 점유율은 3~9%에 그쳤다. 한국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6년 만에 존재감을 잃은 것이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이탈도 뚜렷하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로 출고된 금액은 상반기 74조 8000억 원에서 하반기 96조 9000억 원으로 반년 만에 29.5% 증가했다. 출고 건수도 같은 기간 601만 건에서 747만 건으로 24.3% 늘었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로 자산을 옮기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 당국이 가상자산 산업을 규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경쟁력 약화 원인으로 꼽힌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예치 이자나 대출 상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거래소가 이용자 자산을 자체 운용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 파생상품 운영도 제약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선물 서비스를 제공한 업비트와 레버리지 거래를 지원한 빗썸에 신규 영업 중단하라는 행정 지도를 내렸다. 사실상 가상자산 현물 중개 외에 사업 확장이 가로막힌 셈이다. 미국이 코인베이스를 제도권에 편입시켜 파생상품·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허용하고, 홍콩·두바이 등이 별도 가상자산 규제를 구축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국내 거래소가 규제에 발목 잡힌 사이 바이낸스는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바이낸스 이용자는 USDT를 예치하고 약 4~11%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예치 자산은 대출과 유동성 공급에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 일부가 예치자에게 이자로 지급된다. 이 밖에도 선물·옵션·레버리지, 스테이킹, 자동투자 등 자산 관리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비앤비 스마트체인(BSC) 기반 토큰 바이낸스코인(BNB)은 거래 수수료 할인·가스비 납부·가상자산거래소공개(IEO) 참여 등에 쓰인다. 가상자산 생태계 전반을 망라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를 지나치게 좁히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자들이 합법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 도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