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분증명(PoS) 방식의 가상자산 스테이킹이 연방 증권법상 증권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업계에서는 수년 간 이어진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모습이다.
SEC 산하 기업금융국은 29일(현지시간) ‘일정 프로토콜 스테이킹 활동에 대한 성명서(Statement on Certain Protocol Staking Activities)’를 내고 “대상 가상자산을 네트워크 합의 매커니즘에 따라 스테이킹하고 보상을 받는 행위는 증권법상 등록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산을 직접 스테이킹하거나 제3자에게 검증 권한을 위임하는 구조 모두 투자 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성명서는 스테이킹 참여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해 모두 증권 범위에서 제외했다. △자산을 직접 노드에 예치하는 ‘셀프(Self) 스테이킹’ △소유권을 유지한 채 검증 권한을 제3자에 위임하는 ‘위임형(Self-custodial)’ △수탁자가 고객 자산을 보관하고 검증까지 대행하는 ‘수탁형(Custodial)’ 방식이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지급되는 보상에 대해서도 “네트워크 프로토콜이 코드에 따라 자동 분배하는 것일 뿐 제3자의 기업적 노력으로 발생한 수익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SEC는 특히 슬래싱 보장 등 관련 보조 서비스 전반에 대해서도 “단순한 행정·편의 제공일 뿐 증권성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예컨대 ‘슬래싱 보장’은 검증자 실수로 인한 자산 몰수(slashing)에 대해 일정 수준 보상하는 위험 완화 서비스다. ‘조기 언본딩(Early Unbonding)’은 네트워크가 설정한 자산 인출 대기 기간을 줄여주는 유동성 지원 기능이다. ‘보상 일정 조정’은 보상을 앞당겨 지급하거나 일괄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자산 집합’은 최소 스테이킹 수량을 충족하지 못한 사용자의 자산을 모아 검증 노드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ETH)의 경우 단독 검증자로 참여하려면 최소 32 ETH가 필요하다. 하지만 업비트나 빗썸 등 국내 거래소 스테이킹 서비스를 이용하면 개별 사용자가 보유한 소량의 ETH를 거래소가 모아 네트워크에 위임하고, 지분 비율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SEC는 “이들 행위는 네트워크 운영을 위한 보조 역할에 해당하며, 고정 수익을 약속하거나 리스크를 전가하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보조 서비스는 증권성 판단 기준인 하위(Howey) 테스트상 투자계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는 2023년 SEC가 거래소 크라켄의 스테이킹 서비스에 대해 3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던 전례와 대비된다. 당시 SEC는 크라켄의 고정 수익 약정과 마케팅 요소가 투자계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번에는 “참여자가 직접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기술적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상자산 업계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글로벌 정책 싱크탱크 GDF(Global Digital Finance)의 마이클 바시나는 “증권법은 타인이 사용자의 자산을 오용하거나 탈취하는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법”이라며 “자산을 직접 보관하는 스테이킹 서비스에까지 이를 적용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전문매체 디크립트는 “이번 가이던스는 게리 겐슬러 전 SEC 위원장 재임 시기 동안 지속되던 규제 불확실성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겐슬러 전 위원장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대다수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번 해석은 SEC 전체 위원회 결의가 아닌 기업금융국 수준의 유권해석이라는 한계가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고, 향후 집행국이나 사법부 판단에 따라 해석이 뒤집힐 가능성도 남아 있다. 특히 리퀴드 스테이킹이나 리스테이킹 등 복합 구조는 이번 가이던스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 도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