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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스냅샷]기술 악용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출처=셔터스톡

핵분열성 물질을 급격히 임계량 이상에 도달하도록 해 폭발적으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끌어내면 ‘핵폭발(nuclear explosion)’이 일어난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그리고 핵탄두는 이 원리에 따라 적에게 타격을 주도록 설계된 무기다. 핵분열의 원리는 1930년대에 이미 발견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미국은 원자폭탄을 만들어냈다. 미국뿐이랴.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열강도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학문적, 기술적, 상업적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역사상 최악의 무기의 씨앗이 됐다.

올해 발효 50주년을 맞은 국제조약이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다. 1946년, 미국은 ‘바루크 계획’을 내왔다. 미국이 보유한 핵을 국제 관리 하에 두는 대신 더 이상 핵 보유국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국제 감시와 사찰을 실시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의 핵 독점은 깨졌다. 이후 다수의 국가가 핵실험에 성공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1965년 미국은 NPT의 첫 초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NPT가 체결되기까지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핵 보유국과 미보유국, 미국과 소련 등 이해관계자의 주장이 부딪혔다. 협상은 지난했다.

그럼에도 1968년 7월 1일, NPT는 마침내 체결됐다. 조약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핵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 공멸할 위험에 처한다는 데에는 국제사회가 공감했다. 기술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 소련, 영국과 비보유국 53개국은 11조항의 규칙에 합의했다.



기술은 수단이다. 사물을 다루는 방법과 능력이다. 기술 자체를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할 순 없다. 그러나 기술이 쓰이는 방식에 대해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또 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진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암호화폐 거래는 빠르게 증가했다. 암호화폐는 투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거래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핵무기처럼 악용되는 사례도 늘었다. 탈세, 자금세탁, 마약 구매, 국부 유출, 유사수신행위, 사기 등 규칙이 생기기 전 금융산업에서 난무하던 불법 행위가 고스란히 암호화폐 산업에서 재현됐다. 암호화폐의 사용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고, 범죄 활동은 국경을 넘나들었다.

2019년 6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암호화폐를 포함한 가상자산을 취급하는 거래소와 사업자가 트레블 룰(Travel rule)을 따라야 한다고 권고했다. 금융산업에 이미 적용되는 트레블 룰에 따르기 위해선 서비스 제공자가 암호화폐의 송신인과 수신인의 개인식별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국제기구가 암호화폐 기술이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로 인해 트레블 룰 준수는 어렵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실명인증절차(KYC)를 통해 송금인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도 수취인의 정보까지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송금인이 입력한 지갑주소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난제는 기술에 협력이 더해져야만 한다. 최근 N번방 사건 수사에 암호화폐 업계가 적극 협조하는 모습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유료 가입자는 암호화폐로 가입비를 냈는데, 경찰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전에 코인원과 빗썸 등 국내 거래소는 수사협조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바이낸스, 후오비, 쿠코인 등 해외의 거대 암호화폐 거래소도 디센터를 통해 수사에 적극 협조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업체 크립토퀸트와 블록체인 보안기술업체 수호(SOOHO) 등도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N번방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기술에 기댄 신종 범죄는 좀처럼 그 해결 실마리를 잡기 어렵다. 그리고 그 범죄가 국경을 넘나들면 해결책은 좀더 어두운 곳으로 숨는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질수록 명과 암은 더 짙어진다. 이를 또 다른 기술로만 해결할 순 없다. 토론과 협의, 그리고 협력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술에 버금가는 우리의 무기다.
/도예리기자 yeri.do@decenter.kr

도예리 기자
yeri.d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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