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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넥스트]②이제 ‘블록체인 랩소디’를 연주할 때

선언하라, “내 금융은 내가 결정해!”

최예준 보스코인 대표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해.”

영화<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홀로서기를 했던 프레디 머큐리가 멤버들과 재결합하고 공연 연습을 하면서 이 한 마디를 던진다. 이는 말하자면, 선언이다. 자신 밖의 존재에 더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영화에서 이 지점은 중요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각성이 온 순간, 프레디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지배와 통제를 받는다. 가정이나 일터, 일상 곳곳에 중앙화 구조가 구축돼 있고, 우리는 관성처럼 이곳에 삶을 욱여넣는다. 개인의 자유는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행복이 자기결정권과 직결된다는 연구조사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자유를 제한받는 삶은 행복에서 멀어진다. 영화에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히트하는 과정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형음반사 EMI 임원 레이 포스터는 곡이 너무 길고 생경하다며 다른 곡을 대표곡으로 내세우라고 윽박지른다. 퀸은 이 중앙 권력(EMI)에 반기를 틀고 탈중앙화를 꾀한다. 대형음반사를 배제한 곡 유통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때였다. 퀸은 굴하지 않고 유명 라디오 쇼 DJ 케니 에버렛을 통해 보헤미안 랩소디를 선보였다. 결과는 대히트였다(청취자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에버렛은 일주일도 안 돼 열네 번이나 완곡으로 틀었다). 중간 매개자를 빼고 직접 청취자와 만난 보헤미안 랩소디는 승승장구한다.



한 번 돌아보자. 내가 누구인지 내가 결정하고, 삶(생활)과 노동(일) 등에서 자기결정권을 갖는가. 일상에서 자기결정권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따져본다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투쟁은 자유와 통제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명백한 진실이 있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배신당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97년 국가부도의 날 직전까지 도달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그러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국가와 경제, 금융의 중심부를 장악한 소수가 저지른 실패를 인민 모두가 부담하고 감당해야 했다. 특히 잘못 설계된 금융 시스템은 처벌받기는커녕 구제금융을 받았다. 위기도, 대처도 대다수 사람이 결정한 결과가 아니었다. 직접 당사자는 아닐망정 이해관계자였지만 결정에서 배제돼야만 했다. 결정은 소수가 내리고 책임은 모두가 지는 불합리한 구조 아닌가! 세금으로 구성된 구제금융 제공에 대한 비판은 2009년 1월 첫 채굴된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에 남아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분산을 통해 국가나 시스템의 검열을 받지 않고 개개인에게 경제적·정치적 자유를 줄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대부분 사람은 알게 모르게 주권을 상실한 상태다. 개인 정보를 중앙에 넘겨주고 시스템 관리자에게 검열권을 부여했다. 주권 상실은 식민지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분산화를 통해 검열에 대한 저항력을 갖는 블록체인은 주권 회복이자 자기결정권 선언이다. 알렉스 글래드스타인(Alex Gladstein)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의하면, 블록체인은 경제적·정치적 자유를 제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는 “인류가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고 전 세계 어디나 송금할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역사상 최초”라며 블록체인을 통해 중앙은행 검열에 저항력을 갖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존 금융 산업에서는 시장 주권이 정부와 기업(금융회사)에 있지만 블록체인 금융 시스템에서는 신뢰로 묶인 수많은 개인에게 있다.

글래드스타인은 특히 권위주의 정부나 은행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에서 비트코인은 검열에 저항할 수 있는 금융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금 블록체인을 둘러싼 투기, 사기, 탐욕 등이 블록체인이 가진 해방의 잠재력을 어둡게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분산화 기술은 인류에게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상호작용이 감시되고 검열을 받는 중앙집권화는 결국 식민화의 길이다. 국가의 검열이나 기업의 조직적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개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지점과도 맞물린다.

‘랩소디(Rhapsody)’는 보통 ‘광시곡’으로 해석된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사시 형태로 감정을 거르지 않고 쏟아내면서 특정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나 노래를 랩소디라고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도 그렇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기존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움을 추구했던 프레디의 삶이 녹아있다. 이제는 ‘블록체인 랩소디’를 연주하고 울려 퍼져도 좋을 때다. 내 금융은 내가 결정한다, 고 외칠 때다. 블록체인을 통해 ‘떼창’을 허하라. 패배자를 위한 시간은 없다.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최예준 보스코인 대표

심두보 기자
shim@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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