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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스냅샷]도둑상장이냐 자율상장이냐···기준 모호한 진짜 이유는?

/셔터스톡


지난해 5월 ‘도둑상장, 기습상장, 그리고 자율상장’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해외 거래소 온비트와 국내 거래소 벤타스비트가 ‘아하’ 토큰을 협의 없이 상장하려고 한 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찾아보니 ‘아하’뿐 아니라 그런 사례가 꽤 많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에도 ‘도둑상장이냐, 자율상장이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허락도 없이 암호화폐를 데려갔다며 ‘도둑상장’이라고 주장했고, 사업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반면 거래소 입장에선 자체 상장 기준에 따른 ‘자율상장’이었다. 오픈소스가 기본인 업계에서 공개된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상장하는 건 기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자체 기준에 따라 괜찮은 프로젝트를 상장하는 건 ‘탈중앙화’라는 업계 기반에 알맞은 상장 방식이기도 했다. 두 진영의 입장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같은 문제로 업계가 다시 떠들썩하다. 국내 거래소 지닥이 카카오 계열사 그라운드X의 암호화폐 ‘클레이’를 협의 없이 상장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건 도둑상장일까, 자율상장일까? 여전히 모호하다. 1년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기준이 전무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준 없는 이유,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 때문에


암호화폐는 단일화된 채널을 통해 거래되지 않는다. 여러 거래소를 통한다. 때문에 주식 시장처럼 일정한 상장 요건을 정하는 게 불가능하다. 법을 만들어 거래소에 일관된 상장 기준을 강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다. 거래소 관련법이 통과됐지만 상장에 관한 내용은 없다.

법이 없는 경우에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분쟁을 해결할까? 민법 제 1조는 다음과 같다.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 관습법이란 예전부터 사회의 관행으로 이어져 와 법처럼 굳어진 것을 말한다. 조리는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일반적인 통념, 신의성실의원칙 등을 포함한다.

그런데 블록체인 업계에는 관습법도, 조리도 없는 듯하다. 우선 블록체인 산업은 여전히 신산업이기에 관습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관습은 오랫동안 관행으로 이어져 와야 하는 것인데, 매일 매일이 다른 이 업계에서 ‘이게 관행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직 무리가 있다. 업계의 관습이라는 게 뚜렷하지 않은 상태다.

관습처럼 오래 이어지진 않았더라도,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반적인 통념’은 있지 않을까? 블록체인의 근본정신인 ‘탈중앙화’ 정도가 일반통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탈중앙화로 논하자면 협의 없는 상장을 문제 삼을 필요가 딱히 없다. 모든 거래소들이 이더리움을 협의 없이 상장하지만, 이더리움 재단이 거래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도 탈중앙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젝트라면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탈중앙화 말고 다른 일반통념도 있다는 것이다. 탈중앙화처럼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통념 외에 다른 통념도 있기 때문에 잡음이 발생한다. 업계 종사자라면 알지만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 사업하다보면 누구나 알게 되지만 언론에는 절대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업계에서 암암리에 통용되는 사업 방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대표 A씨는 디센터에 “(상장 이전에 프로젝트 차원에서) 논의하던 거래소가 있어 다른 거래소가 최초 상장을 협의 없이 진행하면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직접 프로젝트를 선별하기보다는 프로젝트와 거래소 간 계약으로 상장이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협의’만 이루어진 상태면 다행이다. 상장료를 이미 지불했을 수도 있다. 최초 상장이라면 더 비싼 요금을 지불했을 가능성도 높다. 비싼 돈을 냈는데 다른 곳에서 말도 없이 최초 상장을 해버리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다수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상장료를 받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자체 기준에 따라 상장한다고 주장하고, 프로젝트들도 이를 당연히 여기고 브로커까지 써가며 상장료를 내고 있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일반통념도 존재하기에 탈중앙화라는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생긴다.

A씨는 “특히 거래소가 일방적으로 상장을 진행할 때는 자체적으로 물량을 구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상장보다 물량이 한정되어있어 가격 유지에 취약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슨 뜻이냐고 한 번 더 묻자, “프로젝트에겐 가격 면에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물량이 한정되어 있으면 당연히 가격이 흔들리기 쉽지만 사실 다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프로젝트들이 상장에 맞춰 가격을 높게 유지시키는, 일명 ‘마켓 메이킹’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의 상식이다. 역시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갑자기 협의도 없이 상장하면 프로젝트는 가격에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다.

산업이 아직 미성숙한 탓일까. 블록체인 업계엔 이런 ‘공공연한 비밀’이 많다. 이런 공공연한 비밀도 일반통념처럼 여겨지니 이 통념을 벗어난 진짜 일반통념(탈중앙화)이 나오면 분쟁이 생긴다.


그래서 앞으로는?


/셔터스톡


조리에는 일반통념, 신뢰 등도 포함되지만 포함되는 게 하나 더 있다. 판사의 양심이다. 분쟁이 이어지는 이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둑상장, 자율상장 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려면 이 시장에 양심적인 플레이어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라면 그 근간에 맞게 사업했으면 한다. 또 거래소들도 좀 더 솔직해지길 바란다. 평소 고액의 상장료를 받고 상장 기준도 모호하게 밝히던 거래소가 갑자기 탈중앙화 정신에 맞춰 프로젝트를 선별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신산업이 단단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업계에 바람직한 관행이 자리잡히길 바란다.

/박현영 기자 hyun@
박현영 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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