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과 핀테크 업계가 스테이블코인 사업 구체화에 나선 것은 세계 주요국 흐름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제도권 편입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지니어스법 통과로 스테이블코인 산업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고 있고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은 이보다 앞서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 이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했다. 같은 당 강준현 의원도 디지털자산혁신법을 준비하는 등 입법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컨소시엄 형태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신한은행이 발 빠르게 기술검증(PoC)에 착수한 것도 이 같은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선제 대응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큰 만큼 제도 시행 시 곧바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차원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안에 상용화 가능한 수준의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신한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KRWSHB’ ‘SFGKRW’ ‘SKRW’ ‘KRWSFG’ ‘SKRW’ ‘SHBKRW’ 등 21건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출원한 바 있다.
신한은행이 배달 앱 ‘땡겨요’에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지급결제 수단 중 하나로 쓰이는 지역화폐의 시스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 크다. 2022년 1월 공식 출시된 땡겨요는 낮은 수수료와 빠른 정산 등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이용자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달 21일 기준 회원 수는 55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서울시를 비롯한 36개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지역화폐 결제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도 추진 중이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지역화폐를 특정 사용처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래머블 머니’를 구현한다면 정책 효과가 극대화할 것”이라며 “땡겨요를 시작으로 국내의 다양한 유통·사용처로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점차 확대되고 있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앞서 신한은행은 한국은행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실증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에도 적극 참여해 디지털 자산 기반의 결제를 실험한 바 있다. 당시에도 땡겨요가 CBDC 가맹점으로 참여했으며 신한은행에서 CBDC를 쓴 이들의 80% 이상은 땡겨요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CBDC뿐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사업에도 적극 나서 디지털 자산 사업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스테이블코인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발맞춰 다양한 파트너사들과의 PoC를 구상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 관계자 역시 “스테이블코인은 향후 국가 간 지급결제, 해외 송금 등 금융 서비스의 새로운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해 제도적·사업적 검토 및 사업 참여에 따른 필수 인프라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NH농협은행 역시 PoC를 실무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은행권의 공동 발행 사업도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주요 시중은행들과 금융결제원 등이 참여하는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는 은행권 스테이블코인 공동 사업 추진을 위한 로드맵 수립에 착수했다. 각 은행의 자체 사업과 별개로 은행권이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일각에서 은행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은행들의 사업 준비가 더욱 구체화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화를 앞두고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PoC와 비즈니스 모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신중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