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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블록체인]P2P 지급결제와 블록체인의 역할 I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를 출입하는 한 기자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박사님, 우린 이미 가상화폐(암호화폐)의 세계에 살고 있어요. 월급이 은행계좌로 들어오기 때문에 동전과 지폐를 (거의) 만질 필요가 없잖아요” 월급 중에 일부는 신용카드로 미리 당겨쓰고, 일부는 각종 공과금 납부를 위해 은행계좌에서 지급되며, 일부는 저축을 위해 다른 계좌로 이체되고, 나머지는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하여 은행계좌에 묶어 놓기 때문일 듯하다. 이 와중에 카드사와 은행은 모든 사람이 신용카드나 은행계좌를 이용해 지급결제를 편리하게 완결할 수 있는 별도의 네트워크(network)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번다.

지급결제는 지급(payment), 청산(clearing), 결제(settlement)의 단계를 거쳐 완결된다. 예를 들면, 을동이가 80원짜리 사탕을 갑순이에게서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을동이는 갑순이에게 100원을 낸다. 이를 지급이라고 한다. 갑순이는 100원이 진짜 돈인지 확인하고 진짜 돈이면 100원을 받고 거슬러 줄 돈을 계산한다. 이를 청산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갑순이는 20원을 거슬러 준다. 이를 결제라고 한다. 만약 을동이가 낸 100원이 진짜 돈인지 확인되지 않거나 갑순이가 거슬러 줄 돈이 부족하면 지급결제는 완결되지 않는다.

신용카드에 의한 지급결제나 은행계좌에 의한 자금이체도 엇비슷하게 작동한다. 다만 동전이나 지폐를 이용할 때와 다르게 카드사 또는 은행이 청산과 결제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행한다. 신용카드에 의한 지급결제를 예로 들어보자. 을동이는 80원짜리 사탕을 갑순이에게 구매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제시한다. 갑순이는 신용카드가 을동이 본인의 것인지를 확인하고 카드사에게 유효한 신용카드인지를 확인한다. 을동이가 제시한 신용카드가 유효하다고 확인되면 갑순이는 매출전표 원본을 을동이에게 주고 사본을 자기가 갖는다. 이후 카드사는 갑순이에게 80원을 지불하고 을동이에게 80원을 청구한다. 물론 카드사는 갑순이와 을동이에게 각각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다.



은행계좌에 의한 자금이체도 마찬가지다. 을동이는 80원짜리 사탕을 구매하기 위해 갑순이의 은행계좌에 80원을 이체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을동이는 자신의 은행계좌를 열어 80원을 갑순이에게 송금할 것을 은행에 지시한다. 은행은 각종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을동이 본인이 맞는지와 을동이의 계좌잔고가 충분한지를 확인한다. 그 다음에 갑순이의 은행계좌가 유효한지를 확인한 후 을동이의 송금지시를 금융결제원을 통해 갑순이가 거래하는 은행에 보낸다. 마지막으로 을동이의 은행이 갑순이의 은행에 80원을 송금하면 갑순이의 은행계좌에 80원이 입금된다. 물론 은행은 갑순이와 을동이에게 각각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다.

우리가 카드사나 은행을 이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동전이나 지폐를 이용하는 것보다 카드사나 은행이 만들어 놓은 네트워크를 통해 지급결제를 완결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불편하다고 느끼는지 최근 몇 년간 지급결제가 간편화하는 추세다. 신용카드를 여러 장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고, 이것저것 떼는 수수료도 많고, 어떤 곳에서 또는 어떨 때는 신용카드 또는 직불카드가 안 되고, 자금이체할 때 요구하는 정보도 너무 많고,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간편휴대, 간편결제, 간편송금을 내세우며 지급결제 서비스가 향상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편휴대, 간편결제, 간편송금을 내세운 지급결제 서비스도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를 이용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어떤 업체가 간편결제나 간편송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삼성페이(Samsung Pay)는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전자지갑과 같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다. 즉 삼성페이는 간편휴대와 간편결제를 지원한다. 삼성페이는 기본적으로 카드사의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지만, 삼성페이가 어디서나 이용될 수 있도록 별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간편송금을 지원하는 토스(Toss)도 마찬가지다. 은행계좌가 없으면 토스를 이용할 수 없다. 즉 토스도 기본적으로 은행의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다. 삼성페이처럼 토스도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한편 삼성페이나 토스와 같이 간편휴대, 간편결제, 간편송금을 내세운 지급결제 서비스는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가 수행하던 일부 역할을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술혁신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지난 2008년 블록체인에 기반해 설계한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P2P ECS)’처럼 말이다. 더구나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이 설계한 네트워크에서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fiat money)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설계한 비트코인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는 중앙으로 집중되고 중앙에서 관리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카드사나 은행이 중앙관리자가 돼 시장지배적 지위를 행사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금융결제원은 은행에 의해 구축되었고, 은행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증권회사나 보험회사는 은행을 통해서만 고객에게 자금이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신용카드 가맹점 망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각 카드사가 독자적인 가맹점 망을 구축하면서 가맹점의 중복가맹비율이 지난 2015년 말 기준 약 7.6에 이른다. 특히 밴(VAN·Value-Added Network)사가 가맹점 망을 구축하면서 가맹점이 신용카드 수납으로 카드사에 지급해야 하는 가맹점수수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달리 사토시 나카모토의 P2P ECS와 같이 블록체인에 기반한 네트워크는 중앙으로 집중되고 중앙에서 관리되지 않는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노드(node)에게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와 권한이 분산돼 관리된다. 즉 중앙관리자의 제어 없이 각 노드에 의해 집단적으로 관리된다. 그만큼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와는 다르게 특정인의 시장 지배적 지위가 행사될 여지가 적다. 여기서 노드는 컴퓨팅 능력(computing power)을 가진 참여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블록체인에 기반한 네트워크가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이 설계한 네트워크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믿음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블록체인에 기반한 네트워크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카드사나 은행의 네트워크처럼 지급결제 네트워크가 중앙관리자에 의해 관리되는 경제적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P2P 지급결제와 블록체인의 역할 Ⅱ’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연선 기자
blueda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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