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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환전 없이 비트코인으로 와인 구매···"테라·루나사태 걱정 없어"

[블록체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찾아라]

<1> 블록체인이 바꾸는 세상…'크립토 천국' 추크市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한 가지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합니다. 금융 선진국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 육성하지만 국내에서는 투기 자산으로 바라보다 보니 규제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서울경제 디센터는 스위스와 싱가포르·미국 등이 블록체인 산업을 어떻게 육성하는지 살펴보는 기획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찾아라’를 연재합니다.

스위스 추크시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한 ‘하우스오브와인’ 매장에서 비트코인으로 와인을 결제하는 모습. 소비자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라이트닝비트코인 중 하나를 선택해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다. 추크=홍유진기자


식당서 호텔·자동차 매장까지

암호화폐 결제·세금납부도 가능

구매당시 시세로 환산, QR로 이체

업주는 즉시 환전해 변동성 줄여

VC도 화폐 자체보다 기술에 집중

토지대장·자율車 등에 적극 투자

“테라·루나가 한국에서는 큰 문제였나요. 스위스에서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칼 코벨트 스위스 추크시장)

블록체인 기술 선진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스위스 추크시. 지방정부의 어떤 정책이 ‘블록체인 1번지’를 만들어냈는지 살펴보기 위해 만난 칼 코벨트 추크시장으로부터 이 같은 뜻밖의 말을 접했다. 달러와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 테라·루나가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며 ‘폰지(다단계 금융) 사기’라고 불린 암호화폐 업계의 대형 사건이었지만 ‘블록체인 1번지’ 추크시에서는 먼 얘기였던 셈이다. 코벨트 시장은 “암호화폐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을 시민들의 삶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선진국의 관점에서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일부에 불과했다.

스위스 추크시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한 와인숍 ‘하우스오브와인’ 매장 내에 다양한 와인이 전시돼 있다. 추크=홍유진 기자


‘크립토 천국’ 추크시에서 암호화폐 결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식당과 카페, 호텔, 자동차 매장 등 업종을 불문하고 비트코인 결제를 반겼다. 지난해 2월부터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로 세금도 납부할 수 있다. 추크시 최초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한 상점 ‘하우스오브와인(House of Wine)’을 찾아 직접 비트코인 결제를 시도했다. 준비물은 와인 값 상당의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개인지갑 두 가지다. 비트코인으로 결제하겠다고 하자 점원이 와인 값을 구매 시점의 비트코인 시세로 환산한 뒤 해당 금액만큼의 비트코인을 전송할 수 있는 QR코드를 안내했다. QR코드를 인식하면 비트코인을 전송할 수 있는 개인지갑으로 연결되는데 이 화면에서 ‘비트코인 전송하기’ 버튼을 누르면 결제가 완료된다. 구매부터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이다. 신용카드에 비하면 느리지만 개인 간 암호화폐 거래보다는 빠르다. 와인숍에서는 비트코인 결제가 완료되는 즉시 스위스프랑으로 환전했다. 통상 암호화페 결제의 장애물로 변동성을 꼽지만 암호화폐의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결제와 사실상 상관이 없었다. 알베르트 오스마니 하우스오브와인 매니저는 “지금까지 와인 값으로 받은 비트코인만 100개가 넘는다”며 “프랑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엄청난 부자가 됐겠지만 변동성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받는 즉시 스위스프랑으로 환전한다”고 말했다. 곧바로 환전할 거라면 왜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할까. 그는 “비트코인 이용자라면 별도의 환전 없이 편리하게 결제하도록 소비자에게 더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며 “이제 추크 크립토밸리에서 암호화폐 결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위스 취리히의 한 상점에 비트코인을 입출금할 수 있는 자동화기기가 놓여 있다. 취리히=홍유진기자

한 시민이 스위스 취리히의 지하철 승차권 자판기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있다. 취리히=홍유진기자


결제를 넘어 시민들의 삶 곳곳에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됐다. 추크시가 2018년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디지털 신분증(ID)이 대표적인 사례다. 추크시는 실물 신분증을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신분증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해 배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ID를 이용한 가상 실험 투표까지 진행했는데 일주일간 72명의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코벨트 시장은 “실제 선거는 아니었고 블록체인 기술을 투표에 활용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시험해본 것”이라며 “직접 해보니 실제로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투표는 중앙집권적인 특성이 있지만 디지털 ID를 활용하면 그런 부분들을 해결할 수 있다”며 “기표소에 모이지 않고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추크시는 일찌감치 블록체인 기술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다양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위스 시장의 흐름이 암호화폐에서 기술로 넘어오면서 벤처캐피털(VC)의 트렌드도 바뀌었다. 스위스 최대 블록체인 VC ‘CVVC’는 토큰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상품과 서비스에 집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마티아스 루흐 CVVC 최고경영자(CEO)는 “투기 이면의 블록체인 잠재력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실제 활용 기술에만 투자한다”고 전했다. CVVC가 투자한 ‘하우스오브아프리카’는 토지대장을 블록체인상에 기록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아프리카 등지처럼 국민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을 믿지 못하는 곳에서 토지대장 시스템의 신뢰도를 높였다. 루흐 CEO는 “나이지리아의 경우 시도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에 토지대장을 등록하더라도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조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토지대장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VVC의 또 다른 투자 기업 ‘아스빈’은 자율주행차의 주행 기록을 블록체인상에 기록한다. 루흐 CEO는 “자율주행차는 사고에 대비해 책임 소재가 명확해야 하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주행 기록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추크(스위스)=홍유진 기자
rouge@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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