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블록체인에서 상장 주식을 토큰화해 거래하는 실험에 나선다. 주식 토큰끼리 직접 사고 팔거나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증권 인프라를 중심으로 토큰증권 제도를 도입하는 한국과는 출발점부터 차이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토큰화된 미국 상장주식의 거래를 촉진하기 위한 ‘혁신 면제(Innovation Exemption)’를 발표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거래 플랫폼에 증권거래법상 거래소 정의 적용을 5년간 한시적·조건부로 면제하는 게 골자다. SEC는 이 같은 플랫폼을 ‘토큰화 증권 거래소(TSV·Tokenized Securities Venues)’로 정의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단순히 기존 주식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 인프라를 블록체인 생태계로 옮긴다는 점이다. SEC는 특정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거래에 사용되는 스마트컨트랙트가 외부에서 검증 가능하고 공개돼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스마트컨트랙트는 미리 정해둔 조건에 따라 거래를 자동으로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다.
SEC는 이런 스마트컨트랙트를 퍼블릭·퍼미션리스 분산원장에 배포하도록 했다. 금융회사 내부 전산망처럼 허가 받은 기관만 들여다볼 수 있는 폐쇄형 시스템이 아니라 거래 기록과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이 공개된 블록체인을 이용하라는 의미다. 이더리움이나 솔라나처럼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근해 거래 기록과 코드를 확인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거래 방식도 달라진다. TSV는 매수·매도 주문을 호가창에서 맞붙이는 대신 자동화마켓메이커(AMM·Automated Market Maker)와 유동성 풀을 활용한다. 시장 참여자가 공급한 자산을 한데 모은 뒤 스마트컨트랙트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고 거래를 체결하는 구조다.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주로 활용돼 왔다. 다만 실제 거래에는 플랫폼 기준을 충족한 참여자만 접근할 수 있다.
거래 가능한 자산의 조합도 넓어진다. 토큰화된 미국 상장주식은 다른 주식토큰뿐 아니라 비증권 가상화폐나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와 거래쌍을 구성할 수 있다. SEC는 비증권 가상화폐의 예시로 허가받은 발행사가 발행한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제시했다. 한 종목의 주식토큰을 다른 주식토큰과 교환하거나 스테이블코인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이다.
무제한으로 주식토큰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SV에서 거래되는 토큰은 원주식과 동일한 배당권·의결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 원주식 가격만 추종하는 합성형 주식토큰은 제외된다. 거래 종목 수와 거래량에도 제한을 둬 기존 증시를 대체하기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 새로운 시장 구조를 시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도 내년 2월 토큰증권 제도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다르다. 국내는 예탁결제원·증권사 등 허가된 기관들이 거래 기록의 합의·검증에 참여하는 허가형 분산원장을 기존 자본시장 인프라와 연계하는 구조다. 초기에는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MMF·사채와 신탁 방식 비상장주식 등을 중심으로 토큰화를 추진하고 상장주식은 한국거래소 중심의 별도 모델을 검증할 계획이다. 3단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수단으로 활용하는 온체인 결제 인프라도 추진하지만 구체적인 도입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은 기존 상장주식에 가상화폐 시장에서 활용돼 온 AMM과 스테이블코인을 곧바로 접목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증권 거래 방식이 글로벌 시장에서 확산될 경우 국내 제도 역시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체인 자본시장을 둘러싼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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