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서울은 디지털자산·블록체인 업계에서 일 년 중 가장 바쁜 한 주를 맞는다. 글로벌 컨퍼런스와 포럼, 크고 작은 밋업까지 수백 개의 행사가 일주일 내내 도시 곳곳에서 이어진다. 전 세계 창업자와 투자자 수만 명이 서울을 찾는다. 2018년 무렵부터 매년 이맘때 반복돼온 풍경으로 어느덧 9년째다. 아시아에서도 이 정도 규모와 열기로 블록체인 행사가 한 도시에 몰리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다른 나라의 행사들과 견주면 아쉬운 대목이 하나 있다. 올해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비트코인 컨퍼런스에는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현직 위원장으로는 처음 무대에 올랐다. 그는 4만여 명의 청중 앞에서 토큰 분류 체계와 규제 샌드박스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규제당국의 수장이 산업 행사를 정책 발표의 장으로 삼은 것이다. 두바이와 싱가포르의 대형 행사에서도 규제당국과 정부 인사를 무대에서 만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민과 관이 한자리에서 산업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최근 1년만 돌아봐도 그렇다. 미국은 지니어스법(GENIUS Act)과 클래리티법(CLARITY Act)을 통해 시장의 규칙을 세웠고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공동으로 규제 정비에 나섰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담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행 주체를 둘러싼 이견 속에 1년 가까이 미뤄졌다. 작년 이맘때의 서울과 지금의 서울 사이에서 산업이 체감할 만한 제도 변화를 찾기는 어렵다.
그 사이 해외에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해외 투자자와 기업에 한국은 여전히 의미 있는 규모의 개인투자자가 밀집한 중요한 시장이다. 그러나 업계의 중심이 개인에서 기관으로 넓어지는 시점에서 한국은 다소 불안정한 시장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무엇이 가능하고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알려주는 제도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들의 프로그램 상당 부분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채워지고 있는 점은 그래서 반갑다. 시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는 신호다. 이제 응답할 차례는 정부와 국회다. 마침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이번 정기국회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가 서울에 모이는 시기와 이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 논의가 같은 달에 놓여 있는 셈이다.
앳킨스 위원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랬듯 우리 당국도 서울의 무대에서 한국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9년째 이어지는 이 축제의 계절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무대가 아니다. 그 무대에 오를 정책이다.
디센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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