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일본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기 위한 연합을 꾸리는 가운데 국내 금융회사는 참여 명단에서 빠졌다. 글로벌 은행들이 디지털 결제망의 표준과 유통 구조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한 반면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조차 매듭짓지 못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회사 21곳은 1일(현지 시간)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법인을 올 하반기 설립한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씨티·웰스파고·UBS 등 참여사들은 공동 결제망을 구축한 뒤 내년 상반기 달러와 1대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신설 법인의 이름과 구체적인 지분 구조 등은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연합에는 BofA·씨티·웰스파고를 비롯해 골드만삭스, 캐피털원,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PNC파이낸셜서비스 등이 참여한다. 미국계 금융회사가 주도하되 유럽과 아시아 주요 은행도 대거 합류했다.
영국 로이즈뱅킹그룹과 캐나다 스코샤뱅크·TD뱅크그룹, 스페인 방코산탄데르·BBVA, 독일 도이체방크·코메르츠방크,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 등이 이름을 올렸다. 네덜란드 라보뱅크와 스위스 UBS, 일본 MUFG은행, 아랍에미리트(UAE) 시리우스인터내셔널홀딩,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더드뱅크도 참여한다.
발행 예정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1대1로 연동된다. 이더리움·솔라나처럼 누구나 거래를 검증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유통될 예정이다. 참여사들은 국경 간 송금과 가상화폐 결제뿐 아니라 기관금융, 도매·소매 결제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장기적으로는 유로화 등 주요 7개국(G7)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추진한다.
전통 금융회사의 진입이 빨라진 배경에는 규제 정비가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을 마련했고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시장규제법(MiCA)을 시행 중이다. 제도권 안에서 발행·준비자산·이용자 보호 기준이 마련되자 은행들이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맞설 자체 결제 인프라 확보에 나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현재 테더의 USDT와 서클의 USDC가 주도한다. 가상화폐 분석 플랫폼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2일 오후 2시 한때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3039억 달러(약 415조 7048억 원)다. USDT가 약 60%, USDC가 약 24%를 차지한다. 은행 연합은 이 시장에 제도권 금융의 신뢰도와 광범위한 고객 기반을 앞세워 진입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반면 한국 금융회사는 이번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 연합에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신한금융그룹·카카오뱅크·케이뱅크 등이 참여한 ‘오픈스탠더드’는 글로벌 기업 140여 곳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협력체로 이번처럼 발행과 결제망 구축을 목표로 한 은행 컨소시엄과는 성격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자국 통화 생태계 확보 경쟁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유럽 금융회사 37곳은 합작법인 ‘키발리스’를 세우고 올해 안에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할 계획이다. BBVA처럼 달러와 유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하는 은행도 있다. 달러 결제망과 연결되면서도 유로화 기반 디지털 결제 주도권은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 기준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여당은 이달 정부안을 토대로 통합 법안을 발의할 방침이지만 발행 주체 등을 놓고 이견이 남아 있다. 경제정책 수장과 청와대 정책실장 교체에 따라 새 정책팀의 검토 과정도 필요해졌다.
금융권에서는 제도 정비가 지연될수록 국내 은행이 원화 기반 생태계를 만들거나 글로벌 결제망 설계에 참여하기보다 해외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유통·환전 창구 역할에 머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제화 논의를 서둘러 국내 금융회사가 발행과 유통 구조를 주도할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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