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운영되던 시장이 이제 법인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 주체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디지털자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편입되는 신호탄이자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동안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개인 투자자 중심의 구조로 성장해 왔다. 시장 규모는 크게 확대됐지만 높은 변동성과 투기성, 제도적 불확실성이라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이후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시장의 신뢰도와 유동성을 높이고 있다. 유럽과 싱가포르, 홍콩 역시 기관 중심의 디지털자산 시장을 육성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 법인시장 개방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법인의 시장 참여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선 시장의 유동성이 확대되고 가격 형성 기능이 더욱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커스터디, 디지털자산 운용, 토큰증권(STO), 실물자산 토큰화(RWA), 스테이블코인 등 다양한 신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은행과 증권사, 정보보호 기업, 블록체인 기업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법인시장 개방은 규제 완화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시장이 성숙할수록 더욱 정교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세탁방지(AML) 체계의 고도화이다. 법인은 개인보다 거래 규모가 크고 구조도 복잡하다. 실제 소유자 확인(UBO), 자금 출처 검증, 이상거래 탐지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제도권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시장감시 기능도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확대되면 대량 거래를 이용한 시세조종이나 내부자 거래 등 새로운 형태의 시장교란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이상거래 탐지와 온체인 분석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금융당국과 수사기관, 가상자산사업자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커스터디 산업의 육성도 빼놓을 수 없다. 기관투자자는 안전한 자산 보관과 관리 체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제 수준의 보안과 내부통제, 보험, 사고 대응 체계를 갖춘 전문 커스터디 산업이 성장해야 법인시장도 안정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결국 법인시장 개방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 개방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개방하느냐’에 있다. 투자자 보호와 산업 육성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다. 혁신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도 문제지만, 안전장치 없는 개방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가상화폐는 이제 더 이상 주변부 금융이 아니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이며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법인시장 개방은 우리나라 디지털자산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와 금융당국, 금융회사, 가상자산사업자가 함께 신뢰할 수 있는 시장질서를 구축한다면 대한민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지털자산 허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법인시장 개방이 단순한 규제 완화에 그치지 않고 신뢰와 혁신이 공존하는 디지털자산 생태계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디센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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