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 가상자산 규제 강화는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11일 국무회의에서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고 20일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특정 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감독규정’이 개정 고시와 함께 시행됐다. 이 과정에서 트래블룰 기준금액인 100만 원을 폐지해 전체 이전거래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개인지갑 거래는 원칙적으로 송·수신인이 동일한 본인 명의일 때만 허용하도록 했다. 해외 거래소는 저위험·중위험·고위험 3단계로 나눠 고위험 거래소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차등 규제 체계도 마련했다. 가상자산 규제의 법적 근거와 실행 방안을 빠르게 정비한 것이다.
과세 역시 충분한 논의보다는 시행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7년 1월부터 연 250만 원을 초과하는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에 22%(지방소득세 포함)의 분리과세가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취득가액 확인이 곤란한 경우의 필요경비 의제 비율 등 실무의 핵심 사항은 여전히 대통령령 위임 상태로 남아 있다. 제도 시행을 서두르는 데 비해 구체적인 보완책 마련은 미진한 상황이다.
하지만 막상 산업 확대와 관련된 법인 실명계좌,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각각 1년 넘게 ‘검토 중’, ‘요원함’, ‘표류’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2025년 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로드맵’은 1단계로 법집행기관·비영리법인·거래소의 매도 실명계좌 허용, 2단계로 상장사와 전문투자자 등록 법인 약 3500개사에 대한 시범허용을 예고했다. 그러나 2단계 후속조치는 ‘하반기 중 발표 목표’라는 일정만 제시된 채 계속 미뤄져 왔다.
결국 지금 확실하게 완료된 것은 빗장을 걸어 잠그는 규제뿐이다. 논의가 진행 중인 과제들조차 제한과 규정에 무게가 실린 미완의 상태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은 금융위원회의 세종시 이전 문제다. 이달 25일 국무회의에서 금융위의 세종 이전안이 안건으로 상정되면서 내부 반발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8월 18~20일 직원 15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방이전 관련 구성원 인식조사’에 따르면 본원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이직을 고려하겠다는 응답은 85.6%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적극 고려한다’는 응답도 69.7%로 집계됐다.
특히 40세 미만 직원의 이직 고려 비율은 92.5%, 변호사는 94.2%, 회계사는 90.6%였다. 젊고 전문성이 높은 인력일수록 이탈 의사가 뚜렷한 셈이다. 감독·검사와 정책 실무를 함께 감당해 온 인력이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종 이전 문제는 가상자산과 무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금융위원회의 역할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정책 수립부터 규제 마련, 시장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제도까지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과 감독규정, 법인 실명계좌 로드맵, 현물 ETF 도입 검토,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간다. 조직이 흔들리는 순간 이 모든 의제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컨트롤타워가 시스템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기술과 금융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아직 정형화된 답이 없는 분야다. 트래블룰의 실제 운영, 개인지갑 송·수신 동일인 판별, 해외 거래소 위험도 평가 같은 문제는 규정 몇 줄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실무진이 업계와 부딪히며 축적해 온 판단과 맥락이 필요하다. 결국 정책의 성패에는 담당자들이 쌓아 온 경험과 노하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세종 이전이 구체화될수록 이런 경험을 가진 실무진이 조직을 떠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한국은 이제 빗장을 걸어 잠그는 규제를 넘어 산업을 확대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점은 오히려 더 늦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언제 더 조일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풀 것인가”다.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 국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디센터 기고]
디센터는 디지털자산 산업의 주요 이슈를 조명하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들의 칼럼을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현장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장과 정책, 기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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