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이 침체를 겪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으로 옮긴 가상화폐가 올해 상반기에만 47조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거래할 수 없는 파생상품과 예측시장, 실물연계자산(RWA) 등 새로운 투자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자금이 해외 온체인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웹3 리서치 업체 타이거리서치와 글로벌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의뢰해 2021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외 거래소 지갑 450만 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 사업자와 개인지갑으로 이전된 가상화폐는 약 47조 원으로 집계됐다. 하반기에도 약 30조 원이 추가로 이동해 연간 이전 규모는 약 7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이후 누적 이전액은 약 687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에 지급한 거래 수수료만 약 1조 4000억 원에 달했다.
이전된 자금은 가상화폐 현물을 넘어 레버리지 파생상품과 RWA, 스테이블코인 기반 서비스 등 국내에서 제공되지 않는 온체인 금융 서비스로 흘러들어갔다. 시장에서는 국내 시장이 현물 거래 중심에 머물러 있는 데다 과세와 규제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이 새로운 상품을 찾아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가상화폐 과세를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대표적인 자금 유입처는 탈중앙화거래소(DEX) 하이퍼리퀴드다. 하이퍼리퀴드는 만기 없이 자산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투자하는 무기한 선물 거래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11월 하이퍼리퀴드 기반 ‘트레이드닷엑스와이지(trade.xyz)’가 주식·원자재 기반 무기한 선물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는 바이낸스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을 선보이며 투자 대상을 넓혔다. 이용자는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최대 50배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다.
한국 투자자들의 거래도 빠르게 늘었다. 한국 투자자 지갑주소 10만 개의 온체인 거래를 분석한 결과 SK하이닉스 무기한 선물이 상장된 올해 2월 이후 한국 투자자의 누적 거래대금은 약 40억 달러(약 5조 7900억 원)로 집계됐다. 약 1000명의 투자자가 이 거래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기준으로 비트코인(BTC) 무기한 선물 거래대금은 약 72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SK하이닉스가 뒤를 이었다. 이어 이더리움(ETH) 39억 달러, 하이퍼리퀴드 토큰(HYPE) 19억 달러, 나스닥100 12억 달러, 솔라나(SOL) 7억 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6억 달러 순이었다. 삼성전자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무기한 선물 거래대금도 각각 3억 달러를 웃돌았다.
해외 예측시장도 새로운 투자처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 투자자의 폴리마켓 누적 거래대금은 약 63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한국 정치·사회 관련 이벤트 거래액은 약 745억 원으로 전체의 12%를 차지했다.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시장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로 약 243억 원이 거래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퇴진 시점을 예측하는 두 개의 시장에서도 약 217억 원이 오갔다.
탄핵 심판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 지난해 3~6월에는 한국 관련 이벤트가 한국 투자자의 월별 거래액 가운데 46~5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활성 투자자의 59~76%가 한국 관련 시장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서울시장 선거 예측시장에는 한국 투자자 406명이 참여해 1만 1439건을 거래했다. 누적 거래액은 약 27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정치 이벤트가 마무리된 뒤에도 예측시장 이용은 이어졌다. 한국 관련 시장 거래 비중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1% 이하로 낮아졌지만 월간 거래 규모는 3100만~3300만 USDC 수준을 유지했다. 투자 대상도 미국과 이란의 충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인선, 가상자산 프로젝트 출시 등 글로벌 이슈로 확대됐다.
타이거리서치는 이 같은 흐름을 규제 회피가 아니라 국내에서 충족되지 않는 투자 수요의 결과로 진단했다. 한 번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한 자산은 파생상품 거래와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운용, 스테이블코인 결제 등을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이용할 수 있어 국내로 돌아올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탈중앙화거래소는 개인지갑만 연결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상품을 거래할 수 있어 국가별 규제만으로 이용을 차단하기도 쉽지 않다.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투자자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해외 플랫폼으로 우회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일부 해외 플랫폼의 국내 접속을 제한하는 데 그치기보다 투자자 보호 장치를 전제로 국내에서도 다양한 디지털자산 투자 상품을 제도권 안에서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윤성 타이거리서치 선임연구원은 “정책은 위험을 차단하는 데 머물기보다 해외로 향하는 수요를 국내 매출과 세수·고용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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