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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업 78% “입법 지연에 사업 차질”…원화코인 도입 요구 확산

[본지, 웹3 사업자 32곳 설문]
디지털자산법 제정 최우선 과제
87%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
절반 이상 “거래소 지분 제한 반대”
“불확실한 규제가 경쟁력 발목”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지연이 국내 블록체인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웹3 기업 10곳 가운데 8곳은 입법 공백으로 사업에 차질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법적 불확실성이 투자 유치와 신사업 추진, 글로벌 경쟁력까지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24일부터 29일까지 두나무와 빗썸 등 가상화폐거래소와 커스터디, 인프라, 리서치·컨설팅, 게임, 대체불가토큰(NFT) 기업 등 국내 블록체인 업체 32곳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78.1%(25개사)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지연이 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는 절반이 넘는 56.3%가 디지털자산법 제정을 꼽았다. 법인 가상화폐 계좌 허용(21.9%)과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12.5%)이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제도 공백이 실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해외 기업과의 협력이 양해각서(MOU)를 넘어 실질적인 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다 투자 유치와 서비스 출시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웹3 기반 결제와 기업간거래(B2B) 시장 확대가 늦어지면서 글로벌 시장 선점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록체인 인프라 기술기업 대표 A 씨는 “원화와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송금 인프라 구축을 준비하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와 발행·유통 규제, 가상자산사업자(VASP) 요건 등이 불분명해 해외 파트너와도 MOU 이상의 협력 관계를 쌓기 어렵다”며 “결국 관련 사업은 해외 자회사를 통해 추진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법 논의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업계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사업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정책 방향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 대표 B 씨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만이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며 “희망 고문식 제도 논의에 모든 블록체인 업체가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갑 업체 대표 C 씨는 “디지털자산법 입법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지연되면서 신기능 출시를 미루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쟁사보다 시장을 선점할 기회까지 잃고 있다”고 밝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업계 의견이 사실상 일치했다. 응답 기업의 59.3%(19개사)는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고, 28.2%는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체의 87.5%가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으며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없었다.

기업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주권을 지키는 동시에 무역 결제와 해외 송금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거래 투명성 제고와 K컬처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결제 수요 대응, 원화 해외 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제시한 기업도 있었다. AI 에이전트 시대의 핵심 결제 수단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국내 블록체인 산업 경쟁력에 대한 평가도 냉정했다. 응답 기업의 53.1%는 국내 산업이 해외보다 1~3년 뒤처져 있다고 답했고, 40.6%는 3년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향후 3년 안에 본사를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도 15.6%였다. 이전 이유로는 정부 규제(32.1%·복수응답), 디지털자산법을 포함한 입법 미비(26.7%), 신사업 출시 어려움(23.2%) 등이 꼽혔다.

규제 체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블록체인 업계 대표 D 씨는 “한국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 체제 아래서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앞으로의 변화에 전혀 준비를 못 하고 있다”며 “금융 당국의 과도한 개입으로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규제 철학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인프라 업체 관계자 E 씨는 “법적 근거 없이 그림자 규제로 산업을 억눌러 국내 생태계가 크게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입법 과정에서 산업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거래소 규제에만 논의가 집중될 것이 아니라 발행과 인프라 영역까지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블록체인 업계 임원 F 씨는 “지금의 입법 논의는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과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지위처럼 유통 단계의 권력 배분에 쏠려 있다”며 “거래소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발행 단계의 인프라가 부실하면 규제가 아무리 정교해도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업체 대표 G 씨는 “디지털자산법이 가상화폐 일반을 규율하는 반면 토큰증권은 자본시장법 체계 안에서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며 “두 트랙이 실무에서 자꾸 겹치다 보니 발행사는 매번 법적 리스크를 새로 계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반대한다’(31.3%)와 ‘매우 반대한다’(25.0%)를 합쳐 응답 기업의 56.3%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반면 ‘동의한다’(18.8%)와 ‘매우 동의한다’(3.1%)는 21.9%에 그쳤다.

업계는 대주주 지분 제한보다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 블록체인 업체 대표는 “국내 디지털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의 명확성과 시장 신뢰 회복, 그리고 실물경제와의 연결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불법·미신고 사업자와 사기성 프로젝트,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력한 시장 정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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