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미래를 둘러싸고 영국과 미국 중앙은행 인사들이 정면으로 맞섰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메건 그린 통화정책위원은 안정성과 신뢰도를 갖춘 시중은행의 ‘토큰예금’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혁신을 이끄는 핵심 수단이라며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3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경제콘퍼런스의 ‘스테이블코인과 통화정책’ 패널 토론에서 그린 위원은 “스테이블코인의 인기는 머지않아 시들해지고 전통적인 은행 예금의 디지털 버전인 토큰예금이 이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5년 후쯤이면 우리가 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그렇게 많은 논의를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차세대 디지털 화폐의 주도권을 놓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스테이블코인, 토큰예금 등이 경쟁하고 있다. 이 중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 법정통화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을 뜻한다. 토큰예금은 시중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한 것으로 기존 은행 시스템의 신뢰성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자산의 거래 효율성을 결합한 지급 수단이다. 최근 미 의회가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마련한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제도권 편입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그린 위원은 장기적으로 토큰예금이 더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는 토큰예금이 아직 시장에서 확산되지 못한 이유로 은행들의 현 이해관계를 꼽았다. 그는 “상업은행들이 기존 수수료 수익 구조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하지만 결국 은행들도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관련 기술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린 위원은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름과 달리 항상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일부는 불법 거래나 자금세탁 등에 활용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시중은행의 자금을 흡수해 예금 기반을 약화시킬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그는 “거북이는 CBDC, 토끼는 스테이블코인, 코뿔소는 토큰예금”이라며 “결국 세 가지가 모두 공존할 수 있겠지만 하나에 투자해야 한다면 토큰예금에 돈을 걸겠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토론에 참석한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의 순기능을 앞세우며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자체에는 악한 것도 위험한 것도 없다”며 “이는 결제 시장에 새로운 경쟁을 도입하는 금융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과도한 규제로 금융 혁신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월러 이사는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을 채택하는 국가는 사실상 고정환율제 국가와 비슷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며 “이들은 미국의 통화정책 영향을 수입하게 되는 것으로 결국 미국 통화정책의 영향력이 더 많은 국가로 확장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발행 물량에 상응하는 미국 달러와 미국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스테이블코인 사용 확대로 달러 수요와 미국 국채 수요가 늘어 달러 기축통화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월러 이사는 CBDC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주요 중앙은행들이 CBDC 추진을 사실상 중단했다”면서 “중앙은행들은 CBDC를 왜 도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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