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기본법이 이제 나오니 규제 샌드박스는 신청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어요. 언제 입법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고민이 큽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국내 디지털자산 기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토큰화 자산 발행·유통 플랫폼을 준비하던 이 기업은 당초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상반기 통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3~4월께 혁신금융 서비스 신청에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안 논의가 기약 없이 지연되면서 사업 로드맵 전체가 틀어졌고 사실상 무한 대기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디지털자산 산업처럼 법과 제도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신산업을 위해 만들어진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기본법이 먼저 마련되고 관련 규정과 시행령까지 나와야 비로소 혁신금융 서비스 신청이 가능하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고 토로한다. 법안에서 토큰화 자산(RWA)을 어느 수준까지 다룰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규제가 미비한 영역에 한시적으로 실험 기회를 열어주자는 취지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다.
문제는 시장은 법안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외 기업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과 금융자산 토큰화 등 디지털자산 신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며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발행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사이 해외 사업자가 발행한 금 기반 토큰인 테더골드와 팍스골드 등은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돼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최근 금값 급등세에 힘입어 이들 종목의 하루 거래 대금은 한때 1000억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원래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법안 논의가 길어지면서 산업을 키우기 위해 추진된 법안이 오히려 산업 현장을 멈춰 세우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랜 기간 사업을 준비하며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고도 정작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해 매출은커녕 폐업 위기에 내몰린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실험조차 하지 못한 채 해외 사업자들만 한국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 디지털자산 산업은 경쟁력을 잃는 수준을 넘어 시장 자체를 통째로 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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