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글로벌 신용카드사 비자의 최고위급 경영진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스테이블코인 테스트베드로 평가했다. 에이전틱 인공지능(AI) 시대를 앞두고 모든 거래가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지는 환경을 실험하기에 최적의 시장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외부 평가와 달리 국내에서는 코인 거래소 지분 제한과 원화 코인 발행 주체 논의에 디지털자산법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리버 젠킨 비자그룹 글로벌 총괄 사장과 스티븐 카핀 비자 아시아태평양 사장 등은 최근 방한해 신한금융지주를 포함한 주요 금융사 최고경영진(CEO)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비자 경영진은 “한국은 가상화폐 투자자가 1700만 명에 달하고 생성형 AI인 챗GPT 유료 결제 비중도 미국에 이어 2위 수준”이라며 “미국을 제외한 지역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을 실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에이전틱 AI가 본격화되면 검색부터 비교, 결제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구조가 자리 잡고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과 블록체인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비자의 판단이다. 특히 한국은 가상자산 투자 경험이 풍부하면서 동시에 AI 활용도가 높은 시장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의 챗GPT 매출 기여도는 5.4%로 미국(35.4%)에 이어 2위를 기록했고, 구글 제미나이 매출 비중 역시 11.4%로 2위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이와 반대 방향이다. 해외에서는 한국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토큰화해 거래하고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주식 결제일을 단축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이를 위한 기본 법제조차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자산의 토큰화와 온체인 금융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실물자산 토큰화 플랫폼 온도파이낸스는 지난 2월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ETF를 기초로 한 ‘EWYon’ 토큰을 출시했다. EWYon의 기초자산은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즈 MSCI 코리아’ ETF다.
이 ETF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대형주 90여 종목이 포함돼 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코인(USDC)으로 결제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거래가 가능하다.
토큰화의 장점은 명확하다. 블록체인 위에서는 자산을 자유롭게 전송할 수 있어 기존 금융 시스템과 달리 시간과 지역의 제약이 크지 않다. 거래와 결제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시차 없이 대금을 정산할 수 있다. rwa.xyz에 따르면 3일 기준 주식 토큰화 시장 규모는 약 9억5059만 달러 수준이다.
이는 국내에서 논의 중인 주식 결제 주기 단축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오늘 주식을 팔았는데 왜 돈을 모레 받느냐”며 결제 주기를 ‘T+2’에서 ‘T+1’로 줄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등 블록체인 기반 인프라 없이는 최소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결제일을 ‘T+1’로 단축하려면 주문·청산·결제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환전까지 즉각 이뤄져야 한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봐도 기술적·제도적 측면에서 결제 주기 단축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블록체인은 자체적으로 장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별도의 기록과 처리 과정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기반 해외 송금에 3~5일이 걸리는 기존 방식과 달리 수초 내 송금이 가능하다. 비용도 수십 달러에서 0.01달러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이미 일본은 지난 2월부터 블록체인 기반으로 24시간 365일 주식 거래가 가능한 실증 실험에 돌입했다.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노무라, 다이와 등 주요 금융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 금융청이 핀테크 실증 사업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결제 주기를 ‘T+2’에서 ‘T+0’으로 단축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토큰 기반 파생상품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약 2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솔라나 기반 지갑 팬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종목 주가에 연동되는 무기한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구조로, 상승과 하락 양방향 투자와 최대 10배 레버리지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국내 증시가 마감된 이후에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동 전쟁 여파로 원자재 기반 온체인 파생상품 거래도 급증하고 있다. 파생상품 거래소 하이퍼리퀴드의 일일 거래량은 최근 54억 달러 수준까지 확대됐으며 은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브렌트유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역시 토큰화 자산 거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9월 나스닥이 제출한 토큰화 증권 거래 관련 규정 개정안을 약 6개월 만에 승인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 테슬라 등 주요 종목과 S&P500 ETF를 토큰 형태로 거래하는 실험이 가능해졌다.
제도권 금융사들도 토큰화와 온체인 금융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고 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최근 주주서한에서 “블록체인 기반 자산 토큰화는 금융 시스템 효율성을 높일 핵심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 금융사들이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며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연내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중동 전쟁과 지방선거, 한국은행 총재 교체 등 변수까지 겹치면서 입법 환경이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달 중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를 재개할 예정이다. 당초 올 2월 말 중동 전쟁 여파로 논의가 미뤄진 이후 다시 입법 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애초 올해 1분기 내 스테이블코인 규율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요 정책 과제에도 해당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거래소 지분 규제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크다. 현재는 대주주 지분을 20%로 제한하고 법인에 한해 34%까지 허용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최종 조율은 남아 있다. 금융 당국은 지배구조 투명성과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는 재산권 침해와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국내 5대 원화 거래소 모두 최대주주 지분율이 30%를 넘고 있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지배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송치형 회장이 25.53%, 김형년 부회장이 13.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빗썸은 빗썸홀딩스가 73.56%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 불확실성으로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합병도 기존 계획보다 약 3개월가량 지연됐다.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지연 영향도 있지만 향후 지분 규제 변화에 따라 계획을 재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전쟁 역시 입법 지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과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당국의 정책 대응이 시장 안정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자금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제도 도입에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디지털자산 입법 논의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치 일정도 변수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 법안이 우선 처리될 가능성이 높고 선거 이후 국회 원 구성에 따라 관련 논의가 다시 진행될 수 있다.
한국은행 총재 교체도 변수로 꼽힌다. 새로 지명된 신현송 총재 후보자는 그동안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온 만큼 취임 이후 정책 재검토와 추가 조율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연내 입법도 불확실한 상황이며 시행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국내 제도는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 참전에…코인거래소 양강구도 흔들린다 [디센터]](https://wimg.sedaily.com/news/cms/2026/02/18/news-p.v1.20260210.c0686fa60e414fb39ec76ae71f90e1b2_T1.jpg)


![전북은행 “디지털자산은 금융 인프라”…지갑 구축한다[디센터 인터뷰]](https://wimg.sedaily.com/news/cms/2026/02/25/news-p.v1.20260225.1b861004bcb7443aa941a9d31e4dabdf_T1.jpg)

![쟁글 “금융권 가상자산 인프라 정조준…‘웹3계 팔란티어’ 목표” [디센터 인터뷰]](https://wimg.sedaily.com/news/cms/2026/02/09/news-p.v1.20260209.bd459cebe84941f18483e57c8122b40a_T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