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돈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김종현(사진) 쿠콘 대표이사는 20년 전 설립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쿠콘이 설립된 2006년만 하더라도 국내 데이터 시장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특히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 꼽히는 금융 분야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사업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10년의 목표는 매출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금융기관의 데이터를 연결하느냐에 맞춰졌다. 은행·증권·카드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5년 동안 국내 데이터를, 이후 5년은 해외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목표했던 10년을 채운 뒤 2016년 API 온라인 스토어 ‘쿠콘닷넷’을 열었다.
쿠콘이 데이터를 쌓는 사이 시장은 급변했다. 마침 각 산업군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며 데이터 수요가 빠르게 증가했다. 토스가 간편 송금을 시작했고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등 핀테크 서비스가 확산되며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쿠콘은 비즈니스를 본격화한 지 5년 만에 매출 600억 원을 돌파하며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현재는 5만 여 건의 데이터를 2000여 개 기업에 제공하는 이른바 ‘K핀테크 뒤에 있는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김 대표는 25일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데이터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등 신기술 시대에서도 핵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 대표는 데이터 한 우물만 파온 장인으로 불린다. 그 뚝심의 출발점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부산대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뒤 동남은행 전산부에 입사했다. 순탄할 것 같던 커리어는 외환위기(IMF)를 계기로 방향이 바뀌었다. 직장 생활 6년 만에 안정적인 은행을 떠나 창업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를 창업으로 이끈 동남은행 전산부는 전자금융을 선도하던 조직이었다. 김 대표는 “카드를 등록하면 톨게이트 통행료가 자동 결제되고 증권사에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금은 당연해진 서비스의 초기 모델을 만들던 팀”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팀장은 ‘한국 인터넷뱅킹의 아버지’로 불리는 석창규 웹케시 회장이다. 팀장이었던 석 회장의 부름에 김 대표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전산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창립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웹케시의 연구소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개발에 몰두했다. 실제 편의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출금, 인터넷뱅킹 등 국내 최초의 전자금융 서비스들이 웹케시에서 탄생했다. 한 번은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집에 가지 않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3개월간 프로젝트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그는 “당시 여의도 교보증권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증권맨들 사이에서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니니 경비원이 수상하게 보기도 했다”며 웃었다.
괴짜 연구원이 회사 대표가 된 계기는 기업 자금관리 솔루션을 개발하던 시점에 찾아왔다. 여러 은행과 카드사·증권사 정보를 한 번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방대한 금융 데이터가 필요했다. 이때 ‘데이터를 연결하는 플랫폼’에 대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 김 대표는 데이터 플랫폼 기업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분사를 결심했다. 그는 “기업들은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만 각자 구축하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며 “이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찾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렇게 출범한 쿠콘의 사업 모델은 데이터를 수집(collect), 연결(connect), 조직화(control)해 제공하는 것이다. 사명 ‘쿠콘(COOCON)’ 역시 이 세 단어에서 따왔다. 현재 쿠콘은 40여 개국, 2500여 개 기관으로부터 약 5만 건의 비즈니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특허 기반 스크래핑 기술과 실시간 전용망을 통해 금융·공공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강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최대 API 스토어 ‘쿠콘닷넷’을 운영하며 개인·기업·글로벌 영역에서 250여 개 API를 제공하고 있다.
쿠콘의 데이터는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된다. 삼성카드·BNK금융그룹·우리카드 등 금융사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활용하고 있으며 카카오페이·토스·핀다 등 핀테크 기업들은 대출·결제 플랫폼을 구현하는 데 쿠콘 API를 사용한다. 현재 고객사는 금융권·핀테크·공공기관·대기업 등을 포함해 600여 곳에 이른다.
데이터를 축적하던 초기 쿠콘의 주요 고객은 웹케시에 집중돼 있었다. 김 대표는 사업을 본격화하며 이 구조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던 2021년 웹케시의 비중을 20%로 떨어뜨렸고 현재는 15%에 불과하다.
그는 “디지털 전환 확산으로 기업들의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매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사업 특성상 원가 부담이 낮아 영업이익률도 30%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은 약 695억 원, 영업이익은 189억 원을 기록했다.
김 대표가 데이터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명확한 원칙이 있었다.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데이터를 직접 가공해 서비스를 출시하는 사업에 대한 유혹도 있었지만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는 “만약 직접 서비스를 했다면 지금처럼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콘의 경쟁력은 데이터뿐 아니라 보안에서도 드러난다. 20여 명의 전문인력이 24시간 365일 시스템을 운영하며 목동과 역삼에 구축된 이중화 센터에서 데이터를 관리한다. 김 대표는 “서버만 2000대 이상 규모”라며 “금융기관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쿠콘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10년, 성장의 변곡점에 선 셈이다. 김 대표는 그간의 성과를 자축하는 형식적인 행사보다는 내실 있는 다음 10년을 설계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오랜 철학에 따라 여러 핀테크 기업들이 쿠콘의 인프라 위에서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신사업을 확장한다.
가장 먼저 글로벌 페이 사업을 키운다. 쿠콘이 보유한 △200만 QR 가맹점 △10만 프랜차이즈 △4만 ATM 인프라를 기반으로 결제·출금·정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쿠콘은 이미 유니온페이·위챗페이·알리페이와의 연동을 완료했으며 올해 상반기까지 20개국 50개 이상의 결제사와 제휴를 확대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카카오페이 등 국내 페이로 해외에서 결제가 가능하게 하는 아웃바운드 사업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원화 및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결제·정산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도록 결제 인프라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앞서 쿠콘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솔라나재단과 스테이블코인 기반 글로벌 결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해 크로스보더 결제 거점을 확보하고 해외 매출을 본격화해 글로벌 성장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기존 데이터 사업 역시 강화한다. 전 분야 마이데이터 제도 시행을 앞두고 금융 마이데이터에 이어 의료 마이데이터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생명·손해보험사와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을 연결하는 보험 상품 데이터 중계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실시간 데이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자사 금융 데이터 API를 MCP 기반으로 고도화해 국내 금융 데이터 공급 시장 선점에 나선다. 김 대표는 “올해는 미래 성장 인프라 구축과 신사업 발굴에 집중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향후 3~4년 내 해외 매출을 본격화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He is… △1970년 예천 △1994년 부산대 전자계산학 학사 △2014년 연세대 공학경영학 석사 △1994년 동남은행 △2000년 웹케시 연구소장 △2006년 쿠콘 대표이사 △2022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민간위원 △2026년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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