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은 ‘현대 금융의 꽃’이다. 투자자에 따라 손실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일 수 있어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반면 암호화폐 산업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가 완고해 진입이 더딘 편이다.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가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된다면 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손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파생상품의 성격을 갖는 ‘파생상품 토큰’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디센터에서 파생상품 토큰의 특징과 위법 소지 여부를 살펴봤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앤티가 바부다 소재 암호화폐 거래소 FTX에서는 이더리움 발행 기준인 ERC-20을 따르는 파생상품 토큰을 판매하고 있다. FTX 거래소에서는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 상품뿐 아니라 ‘-1배(HEDGE)’, ‘-3배(BEAR)’, ‘-10배(DOOM)’처럼 수익률을 역으로 추적하는 파생상품 토큰을 제공한다. 해당 토큰의 발행 및 운용 주체는 ‘LT Baskets Ltd.’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8월부터 고팍스 거래소가 FTX가 제공하는 -1배(HEDGE) 토큰을 ‘헷지토큰’이라는 이름으로 중개 판매하고 있다. 고팍스에 상장된 헷지토큰 항목으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비트코인 캐시, 이오스로 총 5개다. 고팍스 관계자는 “헷지토큰은 이더리움 발행 기준을 기반으로 하는 토큰의 한 종류”라며 “투자자에게 보다 넓은 선택의 폭을 제공하기 위해 상장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투자자의 선택 폭을 넓히는 방식은 주식시장에서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핀테크 업체 디렉셔널은 개인 투자자를 위한 주식대차 공매도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매도 시장은 그동안 기관·외국인 투자자에게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디렉셔널은 개인 투자자들도 공매도를 통한 투자전략을 확보함으로써 안전한 투자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파생상품 토큰은 국내 거래소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최근 암호화폐 하락장이 이어지고 있어 다수 국내 거래자들이 레버리지가 가능한 파생상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펀드시장에서는 미·중 무역 분쟁이나 한·일 무역 갈등과 같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크게 떨어지며 하락장에 베팅하는 리버스 상장지수펀드(ETF)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암호화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견해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오케이엑스(OKEX)는 선물거래와 연계한 무기한 스왑 상품을 추가하고 100배 마진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반면 오케이엑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국내법인 ‘오케이코인 코리아’는 선물상품을 일체 제공하지 않고 있다. 오케이코인코리아 조정환 대표는 “국내에서 아직까진 암호화폐 파생상품 규제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추후 리스크로 작용할 우려가 있어 파생상품의 도입을 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고팍스 헷지토큰이 파생상품이라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암호화폐 트레이딩 관계자는 “암호화폐가 기초자산으로 인정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생상품 토큰이 문제없다고 말하는 건 다소 편의주의적 해석”이라며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라 암호화폐는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파생상품 토큰과 같은 금융투자 상품을 다루기 위해선 자본시장법에 의거 라이센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5월 대법원은 비트코인에 대해 재산적 가치를 인정(대법원 2018.5.30. 선고 2018도3619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암호화폐가 기초자산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파생상품이 법적 규제를 통해 제도권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오케이코리아 조정환 대표는 “암호화폐와 관련된 명확한 룰이 없다보니까 사업을 진행할 때 큰 제약으로 다가온다”며 “비단 파생상품에 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산업에서 행해지고 있는 전반적으로 비정상적인 행태들을 위해서라도 법적인 규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 조재석 기자
- cho@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