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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잡힌 VC·위축된 크립토펀드,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생기 잃는다

해외선 크립토 전문펀드 만들거나 기존펀드의 정관 바꿔 투자

정부 영향권 아래 국내 벤처캐피털은 토큰 투자 아예 불가능

소수 일반법인 투자만으로는 블록체인 생태계 활성화 어려워

출처=셔터스톡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투자회사인 안데르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오직 크립토 기업과 프로젝트에 투자할 목적으로 300만 달러(34억원) 규모의 펀드 ‘a16z’를 결성했다. 이 펀드는 주식, 전환사채 등 전통자산 뿐 아니라 토큰이나 코인에도 투자한다.

실리콘밸리의 대다수 벤처캐피털은 기존 펀드 정관을 변경해 토큰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투자 대상에 디지털 자산을 포함하는 구조다. 글로벌 벤처투자회사의 한 대표는 “구조를 바꾸는 것은 펀드 출자자(LP)의 동의만 있다면 가능하다”며 “LP들도 펀드 운용사(GP)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수익을 추구하는 데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펀드 출자약정액의 10~20%를 토큰 등 디지털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입김 닿는 보수적인 LP 탓에 정관 변경 불가능=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에는 무려 115개의 투자회사가 정회원으로 가입돼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벤처캐피털은 토큰에 투자하지 못한다. 창투조합(벤처캐피털 펀드) 표준규약에 따르면 ‘투자유가증권’은 투자업체가 발행한 주권과 사채권, 기타 유가증권으로서 투자한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정의돼있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은 이 규약을 기반으로 투자조합을 결성하며, 이에 따라 투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토큰, 즉 디지털 자산에 투자하는 게 원칙적으로 금지돼있다.



물론 이 규약은 벤처캐피털과 펀드 출자자가 합의해 변경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대부분 ‘공적 성격’을 띠는 기관이며,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모태펀드인 한국벤처투자의 대주주는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고용노동부, 교육부, 환경부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돈을 벤처캐피털에 뿌리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펀드 규모는 3조4,182억원에 이른다. 또 다른 주요 벤처캐피털 출자자인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주주는 성장금융사모투자합자회사(59.21%), 한국증권금융(19.74%), 한국산업은행(8.72%), 중소기업은행(7.4%) 등으로 역시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벤처캐피털이 결성하는 펀드의 두 주요 출자자(Anchor LP)로 이들의 전격적인 동의가 없는 한 ‘토큰 투자’는 불가능한 셈이다.

출처=셔터스톡

◇일반법인 투자 나서지만 규모 제한적… 해외마저 돈줄 말라= 물론 우리나라에도 블록체인 기업과 토큰에 투자하는 투자회사가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네오플라이, 더벤처스, 파운데이션X 등이다. 이들은 벤처캐피털처럼 다른 출자기관의 돈을 받아 펀드를 결성하지 않는다. 일반법인으로 자체 자금을 토큰에 투자한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뷰티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코스모체인의 토큰 COSM에 투자했다. 네오플라이는 EOS 기반 탈중앙화 거래소 DEXEOS, 블록체인 기반 SNS 프로토콜 TTC, 블록체인 기반 보안 플랫폼 센티널프로토콜, 블록체인 기반 결제시스템 테라 등에 토큰 혹은 주식의 형태로 투자를 집행했다. 파운데이션X 역시 LYZE, 레이온, ICE프로토콜, 템코, 스핀프로토콜 등 여러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했다.

일반법인 형태의 투자회사와 암호화폐 가격의 상승으로 만들어진 국내 크립토 펀드들이 우리나라 블록체인 생태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건전한 성장을 유도하고 있지만, 해외시장의 성장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십여 개의 투자회사가 집행하는 투자의 건수와 규모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벤처캐피털의 대표는 “토큰을 발행하는 블록체인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정부의 눈치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며 “우리도 해외에 별도의 크립토 펀드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미묘한 입장은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블록체인 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부는 지난 8월 13일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발표하며, 블록체인·공유경제 등 데이터 경제, 인공지능(AI), 수소경제 등을 플랫폼 경제 3대 전략투자 분야로 지정하고, 관련 기술개발, 인력 양성 등 기반 조성 사업에 정부 예산 1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내년부터 6개 분야에서 블록체인 공공 시범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관세청, 서울시 등 여러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도 블록체인 사업을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돈이 필요한 블록체인 최전방에선 여전히 암호화폐공개(ICO)에 목을 매는 모습이다. 지난해는 그나마 해외 크립토 펀드의 투자라도 받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암호화폐 시장 부진으로 이들마저 크게 위축됐다. 결국 토큰 이코노미를 바탕으로 한 이들 프로젝트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투자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복수의 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중의 피해와 기존 제도와의 상충을 우려해 ICO 규제를 망설이는 것은 십 분 이해하지만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 등은 정부가 걱정해줄 플레이어들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산업을 탐구하는 많은 전문 투자사들이 더 큰 기대수익을 위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 자체가 산업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심두보기자 shim@decenter.kr

심두보 기자
shim@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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