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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에디터스 레터]새 시대의 상상력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사회 의장./사진=Fed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사람은 누구일까요. 1999년 4월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일 당시 백악관에서 열린 한 연찬회에서 TV 쇼호스트 제이 레노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사람과 결혼생활을 하는건 어떤 기분인가요?” 힐러리 클린턴은 이 질문에 “안드레아 미첼에게 한번 물어봅시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안드레아 미첼은 NBC 소속의 저널리스트였고, 그녀의 남편은 당시 미국의 중앙은행인 미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앨런 그린스펀이었습니다. 농담이었지만 수긍할 만합니다. 앨런 그린스펀이어서가 아니라 Fed의장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고의 65%는 달러입니다. 일국 내에서만 쓰이는 대부분 국가의 화폐와 달리 달러는 여러 나라에서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미국 밖에서 쓰이는 달러만 657조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글로벌 화폐이며 세계의 기축 통화입니다. 이에 달러 금리가 바뀌면 지구 위에서 흐르는 돈의 방향과 양이 달라지고, 우리 동네 부동산 전망도 바뀝니다. 이런 달러 금리를 결정하는 이가 바로 Fed 의장이니, 사실상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할만합니다. 실제 그린스펀의 외에도 제닛 옐런 전 Fed 의장도 2014년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인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Fed 의장이 이번 주 암호화폐와 관련해서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Fed의장은 제롬 파월입니다. 그는 지난 18일 미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암호화폐는 본질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에 실제 화폐로 보기 힘들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암호화폐는 지급결제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쓰이지 않으며 변동성 커서 가치저장 기능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법정화폐의 세계를 관장하는 중앙은행장으로서 모범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주류 경제학, 경제기관에서 암호화폐의 화폐적 기능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케이스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거의 유일한 케이스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정도입니다.(디센터는 지난 4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IMF의 시각을 자세히 전달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미뤄 짐작컨대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의 시각에서는 암호화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인듯 합니다.

지난 주 공개된 한국은행의 보고서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은 현행 법체계에서 암호화폐는 화폐도, 지급결제 수단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외화나 금융투자상품도 아니고요. 앞으로도 화폐로서 기능은 물론 가치변동성 때문에 계산 단위로도 쓰이기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의문은 남습니다. 해당 보고서에는 “암호자산이 은행 예금을 대체하는 정도가 낮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부정적 영향을)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암호화폐가 은행 예금을 대체하는 정도가 낮을 것이라는 점은 희망일까요, 사실일까요.

또 가끔 커뮤니티에서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토큰의 가격을 원화 단위가 아닌 사토시 단위로 통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들이 가격 변동성이 커서 계산 단위로 조차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투자자들이 이미 사토시를 계산 단위로 쓰고 있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지금 현상황에서 암호화폐가 진짜 화폐처럼 쓰일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살아있습니다. 만약 채무 상환을 암호화폐로 받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면? 소소한 일상에서 현금이나 신용카드 없이 암호화폐 만으로 물건을 사고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러면 경제 구조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경제부처의 정책 결정의 영향을 비껴가는 제3의 경제 영역이 조그맣게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요. 암호화폐는 태생이 글로벌이니 이 영역이 국경을 넘는 하나의 경제 구역이 될 수는 없을까요? 그렇다면 달러 중심의 질서는 어떻게 될까요, Fed의장은 10년 뒤에도 지구에서 가장 힘센 사람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미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세상에 여럿 존재합니다. 잭 도시 트위터 CEO는 비트코인이 10년 이내 세계의 단일 통화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사이버 보안 전문가 존 맥아피도 법정 통화의 가치가 ‘0’에 수렴하고 암호화폐의 시대가 열릴 거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주엘라는 이미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하며 법정 화폐 경제의 보완 체제로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느냐 지켜볼 일이 아닙니다. 만약 암호화폐를 둘러싼 새로운 상상력이 현실화했을 때 이는 낙원일지, 혼돈일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혹시 변화가 일어날 때 Fed 의장이나, 한국은행은 여전히 국가를 믿는 국민들에게 경제적 울타리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전환이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을 때, 그 충격을 최소화해야할 책임이 그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현 시점에서 암호화폐의 여파가 크지 않더라도 경제학자와 관료들 중 누군가는 암호화폐 경제 시대를 상상해주기를 바랍니다. 새로 올지 모를 미래에 준비하는 주류 경제계의 모습을요.

블록체인 업계의 젊은 세대는 이미 새 시대의 상상력 위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 저희는 이원홍 블루웨일 대표 인터뷰를 통해 블루웨일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긱 이코노미 시대의 비전을 전해드렸습니다. 직장 한곳에서 일하지 않는, 풀타임 고용이 되지 않는 시대에 블록체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들은 고민합니다.

오는 주말, 제3차 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립니다. 세계 정부가 암호화폐 정책을 함께 논의하는 올해 마지막 장관급 회담입니다. 어떤 결과일지 궁금합니다. 새 시대에 대한 두려움과 비전이 함께 묻어나는 논의를 기대해 봅니다.

/김흥록기자 rok@

김흥록 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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