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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소품블⑨]블록체인의 영원불변 vs. 개인의 잊혀질 권리

조민양 동서울대학교 컴퓨터소프트웨어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 부회장

한자로 ‘야소 기리사독(耶蘇 基利斯督)’이라고 쓰는 것이 있다. 무슨 뜻일까?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글자별로 음훈을 살펴보면 ‘어조사 야(耶), 깨어날 소(蘇), 터 기(基), 이로울 리(利), 이것 사(斯), 감독할 독(督)이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 한자를 한 글자씩 살펴봐도 무슨 뜻인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한자를 읽노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는 한자가 기본적으로 의미를 담고 있는 표의문자(表意文字·뜻글자)지만, 간혹 음역(音譯·한자로 외국어의 음을 나타내는 일)을 해서 뜻과 무관하게 소리를 따서 표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음훈만 가지고는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야소 기리사독도 마찬가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국에서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에서 이를 받아들이면서 뜻과는 상관없이 우리 식으로 ‘야소 기리사독’으로 읽었다. 외래문명인지라 전후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이후 말 줄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기리사독’을 ‘기독’으로 줄여서 불렀고, 야소는 올바른 발음인 예수로 고쳐서 불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기독은 고쳐지지 않고 지금도 쓰면서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가 됐다.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의 ‘기독’처럼 바뀌는 과정, 기록이 생략된 채 통용되면서 그대로 굳어진 것들이 많다. 사실 단어나 말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도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역사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살아남은 사람, 이긴 사람이 지나간 역사를 쓰게 되면서 발생하는 오차다. 승자들이 발생한 사실만 적기 보다는 주관적 입장에서 과거 사실 중에서 취사선택해 픽션(승자의 해석)을 팩트(역사적 사실)라고 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어떤 사실이 중간에 바뀌거나 아니면 누군가 다르게 전달함으로써 ‘(알고 있는) 사실이 (실체적 진실로서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블록체인으로 눈을 돌려보자.

블록체인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는 비가역성이다. 한번 기록된 데이터는 누구도 수정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블록체인에 기록된 데이터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최근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역사적 만남을 갖고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이를 불변·불멸의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이더리움 블록체인 안에 적어놨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역시 블록체인에 기록됐다. 물론 이더리움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한반도 화해의 역사는 탈중앙화된 많은 노드에 분산돼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됐다.

그렇다면 비가역적이고 영원불변한 것이 좋기만 할까?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 중에 ‘디지털 장의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있다. 온라인상에 있는 자신의 기록을 지워달라고 하면 개인의 기록을 찾아 지워주는 일을 한다. ‘잊혀질 권리’를 실행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는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이 유망한 미래 비즈니스라고 지칭한 ‘온라인 평판 관리(ORM·Online Reputation Management) 서비스’를 하는 셈이다. 자신이 사망한 후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음란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이나 사진 등 개인정보를 지우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흔적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가 있지만, 정신적 고통이 심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서비스다. 다만 공공성이 강한 자료를 지워달라고 할 경우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고, ‘알 권리’와 ‘잊혀질 권리’ 사이에서 숨기고 싶은 사실 또는 기록에 대해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적지 않을 듯 하다.

문제는 영원불변, 비가역성을 특징으로 하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사실들을 지워야 할 때다. 만약 모든 내용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상황이 오면 개인들의 ‘잊혀질 권리’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의 비가역성을 적용하면 ‘기독’이란 단어의 변천사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승자에 의해 다시 쓰인 기록이 역사란 이름으로 후대에 남겨질 일도 없다. 그렇지만 개인들의 ‘잊혀질 권리’도 사라진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블록체인의 영원불변과 개인의 잊혀질 권리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인지는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나을 듯 하다. 대신 블록체인이 갖는 가능성과 긍정적인 면을 잘 살피고 진실되고 위·변조되지 않는 기록이 필요한 곳에 블록체인 기술을 잘 적용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우승호 기자
derrid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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