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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톺아보기]암호화폐는 왜 가상화폐가 아닌가

  • 이일구 성신여대 교수
  • 2018-02-01 11:29:32
[디센터 톺아보기]암호화폐는 왜 가상화폐가 아닌가
이일구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
필자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를 ‘암호학(cryptography) 기반의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이용해 거래를 안전하게 이어주는 유통화폐(currency·통화)’로 이해한다.

미국 등 전 세계에서도 암호화폐라고 해석되는 cryptocurrency 라고 부른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만 cryptocurrency를 가상화폐(virtual money)라고 부르거나 법무부 등에선 “화폐라는 명칭이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며 ‘가상징표’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나 법학자가 아닌 네트워크 보안을 전공한 공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암호화폐는 단순한 징표를 넘어 기존 화폐의 문제점을 해결할 잠재력도 충분하기 때문에 징표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

암호화폐와 가상화폐에 대한 구분은 해외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재무부는 가상화폐에 대해 “정부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디지털 화폐의 일종으로 개발자가 발행하고 관리하면서 특정의 가상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결제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흔히 예로 드는 싸이월드의 도토리, 신용카드사의 포인트 등이 가상화폐이자, 일종의 가상징표인 셈이다.

결국 가상화폐 또는 가상징표는 암호화폐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탈중앙화된 분산원장의 보안성과 투명성, 신뢰성, 글로벌 상호운용성 등이 없다. 또 가상화폐 또는 가상징표라고 불리는 도토리나 포인트 등은 무제한 발급이 가능하고, 쓰임새나 가치는 개발자가 정한다. 반면 암호화폐는 정교한 수학에 기초해 총 채굴량이 제한되고 가치 또는 가격은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는 주고 받는 방법도 다르다.

가상화폐는 발행자가 원하는 사람, 누구한테나 줄 수 있다. 이에 반해 암호화폐는 개발자가 발행 규칙만 정할 뿐, 누가 받아갈지 알 수 없다. 받아갈 사람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받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비트코인 등은 컴퓨터를 이용해 수학식을 푸는 과정인 ‘채굴’을 해야 받을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암호화폐를 거래소를 통해 법정통화로 살 수도 있다. 거래소라는 제 3자에 의지하기 때문에 암호화폐의 탈중앙화 개념과는 다르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P2P(Peer to Peer·개인간) 거래 플랫폼인 오케이엑스(OKEx), 후오비 프로(Huobi Pro)가 등장했다. 암호화폐 P2P 거래 플랫폼으로 개인간 거래를 주선한다. 가령 코인을 매도하는 사람이 암호화폐를 예치한 후 호가를 부르면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직접 송금한 후 거래소로부터 암호화폐를 받아가는 식이다. P2P 거래소는 에스크로 역할을 하고 수수료를 챙긴다. 거래소가 직접 현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개인간 거래에 해당한다. 법적으로도 금지할 명분이 없다.

앞서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 것처럼 암호화폐와 가상화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연히 암호화폐와 법정화폐도 태생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암호화폐는 가상화폐인가? 가상징표인가” 또는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논쟁은 소모적일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법정화폐 그리고 암호화폐 각각이 갖고 있는 유용성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최적의 조합을 찾아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불고 있는 ‘암호화폐 열풍’도 한계를 드러낸 법정화폐에 대한 반발심이 크게 작용했다.

현상만 보면 암호화폐 열풍의 원인은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투기 수요가 급증했고 더불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의 이면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법정화폐 체제가 구축한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이 숨어있다. 금융기관과 중앙기관에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고, 권력과 부를 더 많이 가진 자에게 기회가 독점되는 사회구조에 대한 변화를 열망하는 마음도 한가득이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기관에 대한 무한신뢰를 포기했고, 오류와 부정거래가 만연한 금융체제의 민낯도 여러 번 봤다. 그런 경험들이 ‘쉽게 변조할 수 없는 수학 기반의 블록체인을 신뢰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여기다 국가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플레이션 등으로 법정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등 삶이 불안해지자 ‘차라리 암호화폐를 갖는게 낫겠다’고 돌아서는 수요도 상당하다. 또 타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고국으로 이체할 때 송금 수수료를 아끼겠다며 암호화폐를 택하는 수요도 생겨났다. 그 밖에 수수료가 적고 소액 결제가 가능한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도 하나 둘씩 생겨나는 추세다.

이처럼 암호화폐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는 암호화폐의 장점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법정화폐와 신용카드는 제3의 기관을 필요로 한다. 많은 개인정보도 요구한다. 수수료도 높다. 중앙에서 거래장부를 관리하면 위변조 또는 분실 위험도 생긴다. 반면 암호화폐는 분산원장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간거래(P2P)를 한다. 중재하는 제3의 기관이 없다. 중앙 집중식 거래 장부와 달리 변조가능성과 수수료를 대폭 낮출 수 있다. 투명하게 저장된 분산원장과 P2P 거래의 다중서명 방식은 검색, 계약, 거래, 조정 비용을 상당히 낮춰준다. 거래 비용이 낮아지면 소액결제도 할 수 있고 서비스 품질도 높일 수 있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보상’을 통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으로 만든 서비스에 참여하는 커뮤니티에 지급하는 보상이다. 블록체인을 구동시키는 원동력인 셈이다. 생태계 발전을 위한 행동을 하면 보상을 주고, 반대로 발전을 저해하면 큰 비용을 부담하게 한다. 이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커뮤니티가 커지면서 암호화폐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스팀(Steem)이다. 스팀은 블록체인 기반의 소셜 블로깅 플랫폼으로 스팀잇(Steemit)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면 보상으로 스팀 코인을 받는다. 직접 채굴하지 않아도 코인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정확한 정보제공, 생산적인 피드백을 유도하면서 생태계가 자율적으로 굴러간다. 향후에는 기존의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위메프, 티몬 등 온라인 쇼핑몰도 암호화폐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암호화폐의 변동성을 실시간 시세를 반영한 결제 시스템으로 해결하고, 온라인 쇼핑몰은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거래소 역할만 하면 된다. P2P 거래소 형태로 암호화폐로 결제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하나 둘씩 생겨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암호화폐 사용처가 늘어난다면 암호화폐가 화폐기능을 하게 될까?

우리가 뭔가를 ‘화폐’라고 부르려면 크게 세 가지 기능을 갖춰야 한다. 회계의 단위, 교환의 매개체 그리고 가치의 저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암호화폐 가격이 롤러코스터처럼 급등락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화폐라고 보기 어렵다. 큰 가격 변동성은 암호화폐의 투기적 수요를 끌어들이는 요소일 뿐, 화폐로서의 사용성을 막는 요소다.

결국 현재로선 화폐로 기능하기 힘들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본다. 거래량이 늘고 유동성은 풍부해지면서 채굴량이 제한된 조건에 가까워지면 가격은 안정될 수 있다. 가격이 안정되면 가치저장 수단이 될 수 있고 통화로도 사용이 가능해질 듯 하다.

사실 암호화폐의 파괴적 잠재력은 암호화폐 자체가 아니라,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있다.

기존의 금융 시스템이 통신 서비스만 가능했던 구식 피쳐폰이라면, 블록체인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사용자 친화적 스마트폰이다. 블록체인이라는 플랫폼에 설치되는 애플리케이션 (앱)에 따라 기능이 달라지는 확장성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인터넷 기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며 시험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학문적인 연구는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적절한 규제 정책을 수립하고 법과 기술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한 팀을 구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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